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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2040년에 세종대왕이 외계인을 만나면 어떤 대화를 할 지 구성하시오

by 흑엽 posted Aug 12, 2014

2012학년도 연세대학교 수시 입학사정관 전형 창의인재 트랙의 창의에세이 시험이 60.6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로 치러졌습니다.
그당시 시험에 출제된 문제입니다.
<2040년에 세종대왕이 외계인을 만나면 어떤 대화를 할 지 구성하시오>


아래와 같이 써서 시험을 망칠수도 있지만;;;;
엔하위키의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
라는 글의 내용을 많이 참고해서 써봤습니다.


세종: 조선시대의 과학 발전을 위하여..당장 와 주시오!
미래인: 거절합니다.
세종: 아!왜!ㅠㅠ
미래인:  베블런과 같은 사회 ·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관련 기술이 발견 · 발명되었느냐가 아니라 기술과 사용 패턴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미래 기술들은 각 문화권, 종족, 문명 등의 특징과 패턴에 따라 매우 다른 여파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이 변화하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미래기술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적용되었을 경우 혁명에 가까운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사회적 파급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세종: 난 한글을 만들고 금속활자도 만들었는데도, 그런것 없이 모든 백성이 날 존경하고 있소!
미래인: 그것은 지금 당신이 조선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의 유럽으로 순간이동시켜 드릴까요? 유럽 세계의 기득권층은 더더욱 당신이 불러일으킬 변화를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아무리 먼치킨적 능력을 가졌더라도 인간은 사회적 상호부조가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에, 급격한 변화의 과정에서 당신이 생존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아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세종: 무엄하다!!!!!!
미래인: 더욱 과거로 당신을 순간이동 시켜 드릴까요? 당신이 도착한 세계에 화폐와 시장의 도입을 주장했을 때 당신에게 미칠 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은 지역 영주나 절대군주의 손에 죽을 가능성이 높아요. 화폐를 금기시한 사회는 역사상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당신...세종대왕조차도 물물교환을 없애려고 화폐를 새로 도입했다가 백성들의 반발을 못 이기고 두 손 들지 않았습니까?
세종:그 말은...내가 조선에서 성공리에 보급한 금속활자 조차도, 고대사회가 싫어했을 것이라는 말이오!?
미래인: 시대를 잘 만난다면 당신은 종교 개혁의 시발점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습니다. 현실의 종교 개혁도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번역 성경이 활판 인쇄되어 기존 필사본 라틴어 성경에 비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일어났죠. 주의할 점은 중세 시대처럼 사제들이 경전을 해석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회일 경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제들에 의해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유럽에서 금속활자가 등한시되었던 이유도 성경이 민간에 보급될까봐 두려워한 사제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세종: 내가! 그런 일이 없도록 당신을 잘 보호하리다!
미래인: 약간만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저에게 불가능한 것은 더 많습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천재들이 현실적인 벽에 가로막혀 단 한 줄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음을 상기하세요. 그들과 동등한 수준의 문명에 떨어진다면 문명의 이기에 대부분의 판단을 의존해오던 저는 이들과의 머리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태양 중심의 지동설이 대두된 후 인정받기 위해 행성들의 궤도를 계산해 수학적 모델을 발전시키기고 사람들을 설득하기까지 약 200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이 그리 간단했을 거라고 보십니까?
세종: 어허! 난 당신을 믿고! 당신도 날 믿으래도!?
미래인: 2040년 한국의 평균적인 중산층 가정이 누리는 각종 생활수준을 따져보면 중세 귀족보다도 나은 점이 많습니다.제가 거기 가서 피똥싸며 귀족이 되더라도 우월감 말고는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세종: 어허! 내가 부와 명예와 안전을 나의 정치적인 능력으로 충분히 보장하리다!
미래인:저는 조선시대로 오기전에 민주주의가 발달한 2014년 한국에 들렸다 왔습니다. 2040년 고등학생의 98%가 이해하고 있는 <미적분 증강현실VR 수학공부>게임의 기초가 되는 게임산업을, 2014년 한국에서는 온갖 범죄와 정신병의 원인으로 마녀사냥 당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전염병이 귀신때문이라고 믿은것 처럼, 2014년 한국인들도 범죄가 오직 컴퓨터 게임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000년전의 조선시대의 반발을 당신이 막아 주시겠다?왕궁에서 쫒겨난 장영실과학자 처럼 말입니까?!!!!!!!!!!
세종: 그건 오해일세...무슨일이 있었냐면...


게임

히틀러 게임학살 페러디.

by 흑엽 posted Aug 12, 2014

전쟁=공부
군인=학생
독일=부모님
게르만족 우월주의=아이큐 우월주의
유대인=게임
1차세계대전=고3, 수능시험
2차세계대전=재수공부
로 단어만 바꿔서 써봤습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반게임주의 감정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수능시험이 일어나기 직전이며, 아돌프 히틀러 본인 역시 반게임주의 사상을 접하고도 상당기간 게임에 대한 적대감을 표현하지 않았다.
고3일때도, 히틀러와 공부 생활을 같이 했던 동료학생들의 증언을 빌리면 반게임감정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히틀러에게 철십자 훈장(개근상)을 추천했던 후고 구트만 대위도 게이머였다.


히틀러와 부모님들은 수능시험의 승리를 믿어 의심하지 않았으나 결국 패배하게 된다.
그로인해 수능시험을 치르면서 아이큐 우월주의를 굳게 믿은 부모님들은 큰 충격과 수치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히틀러는 수치스러운 수능시험이 끝난 이후, 나치당에 가입하면서 반게임주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히틀러는 아이큐 우월주의에 따라, 수능시험의 패배 원인을 부모님이 아닌 다른 구성원들에게 찾아야만 했는데, 그게 바로 게임이었다. 히틀러의 이론에 따르면 공부에서 진 이유는 게임의 배신과 무능 때문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게임 자본은 당시 유럽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었는데, 게임학살로 게임 자본 흡수를 위해서라도 히틀러에게 반 게임 감정은 필요했다.


결국 히틀러는 게임학살에 성공했고!!재수공부를 하는 도중에 아래와 같이 말한다.
 "만약 게임들이 아직 있다면 우리가 지금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지금도 공부문제가 쏟아지고, 재수공부로 궁핍과 고난을 겪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게임들이 아직도 온 도시에 비밀 방해꾼으로, 선동가로, 정치협잡꾼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만약 게임들이 아직도 민족의 몸 속에 숨어 있다면 우린 지금쯤 옛날 수능시험에서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아우슈비츠(여성가족부)와 함께 게임학살의 상징이 된 트레블랑카 역(교육부)의 경우 수용소에 들어가 강제노역(교육용게임)으로 먼가 써먹일 줄 알았던 희생자(게임개발자)들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가스실(게임셧다운)로 직행되었고 학살만을 위한(아이스마트키퍼) 전문 부대(병크창조과학부)도 계속 존재하였다.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서 둘 다 공부에는 도움이 안되는 인적, 물적 자원의 낭비였지만 나치는 멸망할 때까지 이런 짓을 그만두지 않았다.


히틀러의 멍청함 때문에 재수공부가 망해 갈 때쯤(IT산업의 막장화)...
나치는 인적자원(융합인재교육)이 매우 부족해 공부는 물론 공장(사물인터넷)을 가동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도 게임학살은 언제나 계획에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재수공부를 게임의 강제노역(SW교육)으로 보충(스크래치 강의)하려는 시도가 사실상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게임학살의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일상

영화 명량의 감상평입니다-우리의 리더는 선조입니까? 이순신입니까?

by 흑엽 posted Aug 11, 2014
1.jpg

명량해전이 왜 위대한 승리인지
이순신이 왜 위대한지 매우 잘 보여준 영화입니다.
(전문가 평점이 너무 낮습니다.
영화 평론가들은 머 먹고 사는 사람들인지 궁금합니다.)


"나를 따르라"...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누가 처음 시작한지 정확히 알려져 있진 않으나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도 이 구호를 썼습니다. '돌격!'에 비해 이쪽은 지시를 내린 사람이 앞장선다는 뜻이며, 당연히 가장 위험할 선봉에 지휘관이 모범을 보이면서 서니까 병사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리더와 보스의 차이는 이런 구호의 차이에서 나오죠


몇년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0년 1월 7일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백악관에서 연설을 통해, 항공기 테러미수 사건을 둘러싼 책임소재 공방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던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책임은 나에게 있다(Ultimately, the buck stops with me)"
http://news.nate.com/view/20100108n32018
미국 대통령 트루먼도 백악관 집무실 책상위에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를 새긴 명패를 올려두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 문구를 되새겼다고 합니다.
http://www.trumanlibrary.org/buckstop.htm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최종 책임자가 바로 대통령이고 이 결정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대통령의 몫이라는 뜻이죠.
이 명패는 지미 카터 대통령 때까지 백악관 집무실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http://ipc.pe.kr/24796


그리고 2014년에
동일한 명량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한후 한 말들 때문에
미국 뉴욕 타임즈와
영국 가디언지와
독일 언론과
국내 언론의 비판을 들은
그분의 대통령집무실에는
이런 명패가 없기를...바랍니다. Pass the buck!
우리의 리더는 선조입니까? 이순신입니까?
이순신..이시길 바랍니다. 아니라면..그렇게 바뀌시길 바랍니다.


참고1:
이순신이 똥군기만 잡는 보스였다면 저 상황에서 겁먹고 있다가 영원히 텼겠죠. 빡센군기가 있었지만 뇌물안드시고 공과사가 확실하고 선조가 시기가 나서 죽이려 했을만큼 조선의 마지막 희망의 상징이였기에 겁먹고 텼다가 다시 리더를 도와 주러 온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참고2:
몇백대 일의 능력자를 뽑는 한국 공무원 시험의
한국사 시험 문제입니다.
"여유당전서는 총 몇 권인가?"
"다음 제시된 독립 운동가들 중 OO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는 누구인가?"
.........저런거 단순암기해서 뭐하죠?
엄청난 경쟁률의 한국공무원 한국사 시험문제에서 아래와 같은 문제는...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
이순신 장군의 꼼꼼한 성격 탓에 사실관계를 과장하지도 않고, 굉장히 사사롭고 별거 아닌 일까지도 세세하게 적혀 있고 자기한테 나빴던 일이나(설사병, 원균) 껄끄러운 이야기(불륜)까지 숨기지 않고 기록하여, 조선왕조실록 다음갈 만큼의...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매우높게 인정받는 이순신의 일기에는 특히 명량해전의 기록이 매우 자세 하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혼자 영화300과 같은<통제공무쌍>을 찍고 있을때
처음으로 도와주러온 배의 함장 안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안위야, 싸우다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달아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면 명량해전이 끝난후 고을 수령(면장)인 안위를 이순신은 어떻게 했을까?
1번)사형 2번)곤장 3번)싸데기 4번)아구탕 5번)이순신의 강력한 추천으로 고을 수령에서 전라우수사(정3품)로 파격 승진시킴(면장에서->1급공무원인 관리관으로 승진)
함정힌트: 2014년 한국에선 명량해전이 일어났던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자 쌩뚱맞게도....목숨을 걸고 불과 싸우는 소방관 정책을 10년전으로 되돌림.


참고3:
제 블로그에 첨부한 그림이 영화 스포라고 생각하시는분....학교에서 연도만 암기시키는 선생님이 한국 역사를 헛 가르쳐 주신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cgv 엘리베이터에서 뒤에 서 있던 커플이 그러더군요.
오빠 혼자싸운게 사실이야?
구라야구라
저런놈도 애인이 있는데 난 남자둘이 가서 영화보는 !@$!#$%#%^


참고4:
=<충무공무쌍>이 과장이라는 말이 있어서 이순신이 직접쓴 정유일기 내용을 보충합니다=

이 영화는 고증..등등과 기타 현실과 다른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혼자 싸운거는 잘표현한 영화라고 봅니다.
이충무공전서는 조선시대 명장 이순신 ( 李舜臣 )이 임진왜란 중에 쓴 7년간의 진중일기. 7책 205장. 필사본. 국보 제76호.  ------> 제5책은 〈 정유일기 丁酉日記 〉 로 27매(1597.4.1. ∼ 1597.10.28.),  ----> 그 5번째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1597년 갑진일 9월 16일  맑다>
아침에 별망군이 와서 “적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곧장 우리 배를 향하여 옵니다”라고 보고했다.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더니 적선 330여 척이 우리 배들을 에워쌌다.
우리 장수들이 중과부적임을 알고 후퇴해서 피할 궁리만 했다. 우수사 김억추는 물러나 아득히 먼곳에 있었다. 나는 노를 급히 저어 앞으로 돌진하면서 지자포ㆍ현자포 등 각종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댔다. 마치 나가는 게 바람과 우뢰 같았다.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이 서서 빗발치듯이 쏘아대니, 적들이 감히 대들지 못하고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 겹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었다. 나는 침착하게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게는 맞서 싸우지 못할 것이다. 일체 마음을 동요치 말고 힘을 다하여 적선을 쏘아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먼 바다로 물러나 있으면서 관망만 할 뿐이었다.
나는 배를 돌려 바로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그 목을 베어 효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배가 뱃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차차로 멀리 물러날 것이요, 적선이 점점 육박해 오면 일은 아주 낭패가 아닌가. 곧 호각을 불어서 명령 깃발을 내리고 초요기를 올렸다. 그러자 중군장 미조항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차로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먼저 왔다.
내가 배 위에 서서 몸소 안위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해서 어디 가서 살 것 같으냐.”
 그러자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다시 김응함을 불러 일렀다.
 “너는 중군장의 신분으로 멀리 피해 있으면서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지만 적세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려 한다."
그러자 두 배가 곧장 쳐들어가 싸우려 했다. 그 때 적장이 배 3척을 지휘하여 한꺼번에 안위의 배로 매달려 서로 먼저 올라가려고 다투었다.
안위와 그 배에 탔던 군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어지러이 싸우다가 탈진에 이르렀다.
나는 배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댔다. 그러자 적선 3척이 모조리 다 전복됐다. 녹도만호 송여종, 평산포대장 정응두의 배가 합세해서 적을 쏘았다.
항복해온 왜적 준사란 놈은 안골포의 적진에서 투항한 자인데, 내 배 위에서 내려다보며, “저 무늬 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놈이 적장 마다시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구리를 던져 이물(뱃머리)로 끌어 올렸다. 준사는 펄쩍 뛰며 “이게 마다시다.”라고 하였다. 나는 곧 명령을 내려 토막으로 자르게 하니 적세가 일시에 크게 꺾여 버린다.
이때 우리 배들이 일제히 북을 치며 진격하면서 지자포ㆍ현자포 등을 쏘고, 또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그 소리가 바다와 산을 뒤흔들었다. 적선 30척을 쳐부수자 적선들은 물러나 달아나 버렸다. 적은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실로 천행이다.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도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당사도(무안군 암태면)로 진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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